카테고리 없음

밥 퍼주는 사랑 650인분 아침 만들기

사나이로 2006. 11. 1. 06:20
 

지금은 많은 학생들이 교내 급식을 통해 점심식사를 해결하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3단 보온통에 물병하나 들어간 도시락은 교과서나 참고서 이상으로 중요한 등교시 필수 지참물이었다. 난로위에서 익어가던 뜨거운 양은도시락의 추억까지는 아니더라도 보온통에 담긴 차진 밥과 반찬 속에는 오롯이 어머니의 정성이 묻어 있었다. 새벽마다 언제나 변함없이 준비되는 어머니의 도시락은 그러나 당시에는 너무나 당연하게만 느껴졌다.


△ 아직은 이른 새벽. 눈을 부벼보지만 잠은 쉬이 달아나지 않는다. “자, 밥하자!

군대에서 나오는 밥도 한편은 너무도 ‘당연(當然)’하다 싶었다. 아침마다 식당에서 나를 기다리는 밥이야말로 군복무를 하면서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대가라는 생각에 때로는 부족한 듯한 밥맛과 반찬에 대해 불평과 원성을 쏟아 부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물론 어머니의 따뜻한 손맛에 비하자면 그 어떤 밥과 반찬이 만족스러우랴. 허나 고개를 조금만 들어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급양병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휴일도 없이 365일 내내 새벽같이 밥을 준비하는 이들의 정성은 학창시절 도시락을 싸시던 어머니의 정성과 별반 다름없는 것이었다. 천고마비의 계절. 유난히 밥맛이 넘치는 가을의 한켠에서 ‘공감’에서는 급양병들의 정성을 조금이나마 담아내고자 이들의 주방에 직접 들어서기에 이르렀다.

새벽 3시 50분.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부벼가며 잠을 깨운다. 오늘도 변함없이 아침밥을 지어야 한다. 초임병들이 가끔 밀려오는 아침잠을 이기지 못해 아침식사 준비에 차질을 빗는 일이 간혹 있기는 했지만 365일 새벽같이 일어나 650인분의 아침을 챙기지 못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다시금 몸을 추스르고 위생복을 챙겨 입는다. 장화에 고무장갑, 위생모에 앞치마까지 두르면 준비 끝. 곧장 송미기(送米器) 를 가동시켜 전날 담아놓은 쌀을 세미기(洗米器)에 보낸다.


△ 세미기에서 씻어진 쌀을 밥통에 담아낸다. ‘물’과 ‘쌀’의 적절한 배합비를 맞추는 작업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 불고기에 들어갈 고추장과 된장.
이 많은 양을 탁탁 털어 넣어야 한다.

탈탈탈...기계가 부주런히 쌀을 씻는 동안 함지박같은 국통으로 자리를 옮긴다. 오늘의 주메뉴는 오징어돈육불고기와 감자된장국. 족히 수십마리는 되어 보이는 오징어와 돈육을 다듬어 거대한 솥안에 부어 넣는다. 650인분이라는 양은 어떻게 가늠하는 것일까. 물론 정확한 계량을 통해 담아내어 놓았겠지만 정확한 눈짐작으로 조미료를 담아내는 손놀림에는 오랜 기간 숙련된 장인(?)의 실력이 느껴진다.

오늘 찾은 곳은 계룡대 근무지원단 소속의 공군사병식당. 일의 효율을 도모하고자 이곳에서는 다른 곳과는 다르게 교대근무를 실시한다고.


△ 주방이 분주한 동안 식당을 정리하는 막내.
‘청소’에도 ‘혼신’을 다해보이는 듯.

△ 맛있나?” 간보기에 열중하는 이동희 일병

14명의 급양병들이 아침, 점심, 저녁식사를 2교대로 돌아가며 준비하고 있다. 3명이 먼저 일어나 밥과 반찬을 준비하는 동안 홀에서는 막내가 부지런히 청소를 하고 있다. “칼을 쥐기 위해서는 청소부터 한다”는 만고불변의 주방 진리가 이곳에서도 통하고 있었다.

돈육불고기와 국을 끓이는 동안 세미기에서 나온 일정분의 쌀알을 밥솥에 담아낸다. 이 곳은 전국에서도 손에 꼽힌다는 최신시설을 갖추고 있어 수고가 덜한 편이라는 류기혁 상병. 다른 식당은 대개 밥통을 찜통으로 옮겨 직접 찌워야 하지만 이곳은 취반기(取飯器)라는 최신시설을 이용한단다. 밥통에 옮긴 쌀을 30분만 뜸들이면 차진 밥이 된다는 취반기. 밥맛도 다른 곳보다 한결 낫단다. “쿠다당!! 이크크..” 어디선가 들려오는 묵직한 둔탁음. 장화를 신었지만 분주하게 움직이다 보면 젖은 타일바닥에 넘어지기 일쑤다. 아무렇지 않은 듯 탁탁 털고 일어서지만 사실 650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주방은 각종 위험이 도사리는 ‘배틀 필드(Battle Field : 전장)’에 다름 아니다. 돈육을 자르는 기계는 날카로운 칼날을 지니고 있어 자칫 방심하면 손가락을 잃을 수도 있다.

간단해 보이는 햄버거 조리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650개의 빵을 오븐기에 넣어 데워야 하는데 하나하나 기계에 담아내는 수고는 둘째치고 자칫 오븐기를 잘못 열면 뜨거운 증기 때문에 큰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고. 뜨거운 밥솥과 기름솥도 경계대상 1호다. 위험한 가스장비와 젖은 타일바닥까지 한시도 눈을 팔면 안된다는 정기종 상병의 말에는 웬지 모를 비장함까지 서려 있었다.

△ 650인분의 김치와 돈육불고기를 준비하는 김태백 일병.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숙련되면 그래도 한결 낫지만 급양병은 정말 고된 일이랍니다”라고 운을 뗀 이동희 일병. 7톤 트럭에 담겨오는 어마어마한 식재료를 옮기는 일에서부터 쉬는 날없이 365일 일해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 오전 5시 30분. 드디어 오늘의 첫 손님 등장!

“주방에서는 인생의 모든 고뇌를 느낄 수 있다”는 요리만화의 대사처럼 매일같이 650명분의 삼식 세끼를 마련하는 일은 그야말로 ‘전쟁’과 다름없어 보였다. 쏟아지는 피탄에 상이병사가 발생하듯 매일매일 전쟁과 다름없는 분주한 주방에서 병사들은 이곳 저곳 다치기도 많이 다친다. 일의 특성상 허리통증은 피할 수 없는 데다가 잦은 설거지에 퉁퉁 불어터진 손은 주부습진이라 하기엔 너무도 안쓰러워 보이는 것이었다. 군을 소재로 한 한 영화에서 ‘군대가서 밥만 짓던 취사병’이라며 놀려대던 철없는 대사가 떠올랐다. 하지만 통념과는 다르게 주방은 정말 ‘장난’이 아닌 곳이었다. “놀리는 사람이 뭘 모르는 거죠” 김태백 일병은 고된 가운데서도 이 일의 즐거움은 분명 있다며 손사래를 친다. 복무를 마칠 때쯤이면 웬만한 한식요리는 눈감고도 조리할 수준이 되는 데다가 이런 장점을 키워 전역후 조리업계로 진출하는 수도 상당하단다. 군복무중 배고플 일이 없다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없으면 ‘밥’이 없다는 보람감은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이 일의 장점이라고.

“군식자재 유통의 특성상, 간혹은 레시피에 맞지 않는 재료가 첨가된다 던가 부족한 경우가 생기기도 하죠. 그때마다 맛이 이상하다는 불평이 나오는 때가 간혹 있지만 ‘있는 재료는 무조건 맛있게 만든다’는 신조로 정말 최선을 다한답니다.” 한창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어느덧 5시 30분이 지나간다.

근무시작이 이른 헌병과 의장대들이 배식을 위해 들어서는 시간. 카메라를 잠시 내려두고 이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힘든 조리과정을 같이 한 탓일까. 따끈한 오징어돈육불고기에서 얼큰한 감자국, 짬조름한 김과 차진 밥까지 이 날 아침식사는 과장 조금 보태 ‘천상의 맛’을 내고 있었다.


△ 오늘의 아침을 책임진 4명의 용사들. 정기종 상병, 김태백, 이동희 일병. 조리를 총책임한 선임 류기혁 상병은
“오늘 한 일도 없는데...”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취재에 수고가 많으시다며 차가운 농협우유를 건네는 류상병이 이내 설거지를 한다며 주방으로 사라진다. 푸근한 찜통의 김처럼 매일 아침 수백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오물오물 입안에서 느껴졌다. ‘표현하는 사랑이 아름답다’는 말처럼 오며가며 던지는 한마디가 이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니 오늘부터라도 급양병들을 만나게 되면 웃는 미소와 함께 아낌없는 ‘밥사랑’을 표현해 보는 건 어떨까?

“오늘 아침밥 참 맛있었습니다!”라고.


◆ 취재 : 공군본부 최세진 중위

출처: http://www.airforce.mil.kr:7778/news/afnews/afnews_3_1433.jsp?searchType=&search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