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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의욕 없고 불안한 당신… 혹시 우울증?
사나이로
2009. 3. 10. 09:18
![]() 입시·취업·노후 스트레스 국민 전염병으로 번져 인기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출연하다 지난 7일 자살한 탤런트 장자연(여·27)씨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경찰은 밝히고 있다. 사건을 맡은 경기도 분당경찰서 오지용 형사과장은 9일 본지 전화취재에서 "장씨의 진료 기록을 조사한 결과, 1년여 전부터 성남 P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았고, 최근엔 서울 삼성동 T정신과에 다니고 있었다"고 밝혔다. 장씨 사망을 신고한 친언니(33)는 경찰 진술에서 "평소에 자주 우울해했었고 최근엔 혼자 집에만 있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제작진 등 장씨 주변 사람들은 한결같이 "장씨가 촬영장에선 늘 밝고 활달한 모습이었다"며 '의외'로 받아들이고 있다. 10년 전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고 애완동물을 키우며 우울증을 달랬던 장씨의 숨겨진 모습은 외부 세계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우울증이 워낙 감춰지고 숨기고 싶은 질병으로 인식되다 보니 밖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우울증은 최근 우리 주변에서 급속히 늘어, 2007년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49만명에 달한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 100명 중 한명 꼴로 우울증 환자인 셈이다. 이는 2003년 38만여명에서 4년 사이 25% 늘어난 수치다. 환자들이 자기만의 우울한 세계로 숨는 사이, 우울증은 점차 '국민 전염병'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악화된 경제상황이 우울증 증폭 전문가들은 우울증이 경제 상황과 관련 있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고려대 김문조 교수(사회학)는 "경제가 나빠질수록 사람들이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기보다 안으로 삭이고, 이런 불안이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특히 우리 사회의 3대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는 입시·취업·노후불안 문제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우울증은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의학적으로 우울증은 우울증 소인(素因·타고난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외부 스트레스나 타인과의 갈등 과정에서 증폭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 교수는 "성격이 밝은 사람도 뇌에서 행복감을 관장하는 신경호르몬 세로토닌 분비가 적거나 여성호르몬에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 우울증이 나타날 수 있다"며 "환경이나 성격만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산후(産後)우울증이나 갱년기 우울증을 앓는 여성들 중에는 의외로 평소에 밝은 성격인 사람이 적지 않다고 신 교수는 전했다. 연령대별로 우울증을 증폭시키는 요인은 다르게 나타난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정신과 환자들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0대는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와 '왕따' 같은 학교 내에서의 갈등 ▲20~30대는 연애와 취직 등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데서 오는 좌절감이 우울증을 일으킨다고 한다. 또 ▲40~50대 남성은 조기 은퇴나 실직으로 인한 상실감 ▲40~50대 여성은 폐경에 따른 신체 변화와 자식들이 장성해 품을 떠난 후 허전함을 느끼는 '빈 둥지 증후군' ▲60~70대는 경제적 빈곤과 독거 생활로 인한 외로움 등이 우울증 증폭 요인으로 지목된다. ◆치료받지 않는 환자들 40대 전업주부 A씨는 지난해 가을 무력감을 느끼면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할 것 같다'는 등 근거 없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결국 작년 11월 남편 손에 이끌려 대형병원 정신과를 찾았다. 하지만 세 차례 면담이 끝날 때까지도 A씨는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며 약 먹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남편의 설득 끝에 두 달간 약 복용을 했으나 "이젠 좋아졌으니 치료를 안 받아도 된다"며 외래 진료를 끊었다. A씨는 지난달 예전보다 우울증 상태가 더 악화돼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6개월 이상 약물치료를 받아야 안정적으로 회복될 수 있는 상태였지만 일시적인 증세 호전을 과신했던 것이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김어수 교수는 "외래로 다니는 우울증 환자 3명 중 한명 꼴로 치료를 도중에 중단한다"며 "많은 환자들이 우울증을 종교 생활이나 운동으로 극복할 수 있는 의지의 문제로 보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폐렴이나 위궤양이 신체 장기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보고 치료받듯이 우울증도 뇌 기능의 이상 증세로 봐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환자들이 부담 없이 정신과를 찾지 못하는 것도 우울증 치료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한국자살예방협회 조사에 따르면,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우울증을 느끼는 사람의 30~40%만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관리로 피해 막아야 우울증 환자 치료로 국민건강보험에서 지불한 진료비는 2003년 969억 원에서 2007년 1632억여원으로 급증했다. 게다가 우울증의 상당수는 자살로 이어져, 현재 우리나라는 인구 10만명당 자살 사망자수가 24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2008·OECD 헬스 데이터). 2000년∼2007년까지 자살로 사망한 수가 약 7만명으로 군(郡) 단위 인구가 자살로 사라졌다. 정신의학계에서는 자살자의 3명 중 2명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우울증과 자살 방지에 대한 보건의료체계는 미비하다. 한국자살예방협회가 미국·영국·호주·핀란드 등과 한국의 우울증·자살 상담과 예방 프로그램을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는 우울증 등으로 자살을 시도한 사람에 대한 관리 수준이 꼴찌인 것으로 평가됐다. 지역 사회에서 자살 예방센터 운영이나 우울증·자살 예방을 위한 학교 프로그램도 제일 낮은 수준의 '매우 미흡' 평가를 받았다. 고려대 의대 정신과 이민수 교수는 "일본에서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정신건강센터가 우울증 환자나 자살 사고가 있는 사람을 집중적으로 관리하자 자살자가 40%까지 감소했다"며 "우리도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우울증 관리를 치밀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원문 기사전송 2009-03-10 03:18 최종수정 2009-03-10 05: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