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비판글 자제 경고받은 ‘88만원 세대’ 저자 ‘여적’ ‘오적’ 등 굵직한 필화사건 이후 수십년간 물러나 있던 ‘필화사건’이라는 용어가 다시 불려나왔다.
지난 1월 말 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은 “정부의 적지 않은 압력과 요청에도 불구하고 금산분리 옹호 논리를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다”며 중도 사임을 택했다. 그는 “정부가 연구원을 ‘싱크 탱크’(think tank)가 아니라 ‘마우스 탱크’(mouth tank)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 최근에는 우석훈 박사(41)가 정부 고위 관계자로부터 ‘정부 비판글을 자제하라’는 경고를 받았다고 밝혀 파문이 일었다. 그는 지난달 12일 자신의 블로그에 ‘필화사건’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올려 이같이 밝혔다. 녹색성장에 대해 정부를 비판한 칼럼이 문제가 됐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신영동 집에서 우 박사를 만났다. 그는 경고를 전한 정부 관계자와 구체적인 경고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는 “전체 지식인 사회에 대한 정부의 재갈 물리기가 심각한 수준”이라면서 “정책에 대한 비판적 논쟁은 ‘정책적 시뮬레이션’이며 지식인들의 비판이 제약될수록 정책 시뮬레이션이 위축돼 정책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터넷과 출판의 정부 검열이 강해지면 비판 여론은 결국 다시 거리로 나오게 된다”면서 “경제난과 맞물려 올해 국민적 저항의 이슈는 ‘빈곤’이 될 것이고 정부는 지난번 촛불집회보다 더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화사건’이라는 글을 올린 것과 관련해 교수사회 분위기는 어떤가요. “꼭 그 글 때문이 아니더라도 요즘 서로 ‘몸조심, 입조심이 보약보다 낫다’는 농담을 주고받아요. 1980년대 농담이 돌아온 겁니다. 그만큼 압박감이 대단해요. 대학 교수든 시민사회에 속한 지식인이든 정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안됩니다. 유·무형의 압박이 있죠. 정부 발주 프로젝트를 맡은 경우 압박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고요. 지식인들도 정부를 비판할 때 치러야 하는 대가에 대해 집단적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프랑스 등 유럽에 비해 지식인 사회의 비판 전통이 약하기도 하고요.” -국책연구기관 등 정부 유관기관에 속한 연구원들의 사정은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지식인 사회 재갈 물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할까요. “전방위적으로 시작됐다고 봐야죠. 인터넷을 통한 표현의 자유 제약, 연구원에 대한 연구주제 제약 등이 이어질 경우 전문가 집단에서 나올 수 있는 기술적 조언은 상당히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통제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언로를 막는 것은 언론자유 침해라는 기본적 가치 문제 외에도 정책적 시뮬레이션 과정을 사라지게 해서 결국 정책 효율성을 떨어뜨리게 될 겁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개발사업, 재정정책은 여러 기술적 대안과 검토가 많이 필요해요. 시행하기 전에 논쟁을 많이 거쳐야 합니다. 논쟁은 곧 ‘정책적 시뮬레이션’이니까요. 기술적으로 비판적 논쟁을 제기할 수 있는 이들이 전문가, 지식인이거든요. 이런 정책 시뮬레이션이 사라지면 점점 밀실행정으로 갈 수밖에 없지요. 절차가 튼튼해야 정부도, 정책도 힘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책 시뮬레이션 없이 추진되는 대표적인 사례를 꼽는다면. “4대강 정비사업이 대표적이죠. 수십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연결된 사업인데 정부는 일방적으로 발표한 뒤 귀는 틀어막은 채 추진하고 있어요. 녹색성장 한다면서 4대강 제방에 자전거도로를 만들겠다는데, 사실 이건 대운하랑 다를 바 없는 겁니다. 또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 만들면서 이를 모법으로 하고 원래 있던 에너지기본법과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을 일반법으로 내리는 안을 내놨어요. 당연히 법안 간 충돌이 있고 조정할 게 많은데 이 역시 빨리빨리 밀어붙이고 있지요.” -이번에 직접적으로 문제가 된 글이 녹색성장 관련 칼럼이었습니다. 현 정부의 ‘녹색성장’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말도 안되는 녹색입니다. 반녹색에 가깝죠. 더군다나 이런 정책은 국민적인 논의 과정이 필요한데 이를 모두 없애고 기형적인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공사 예산의 대부분이 토목사업에 들어가고 녹색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어요. 녹색은 공공성, 공적인 생태자산을 의미해야 하는데 정부는 물 민영화 사업 같은 것도 녹색사업이라고 하고 있거든요. 이건 녹색 마케팅일 뿐입니다.” -정책뿐 아니라 근본적인 방향성의 차이도 지적하지 않았나요. “생태는 미래형 주제인데, 정부는 거꾸로 토건자본을 강화시키고 있으니 방향이 정반대라 충돌할 수밖에요. 현 정부는 토건자본과 강성 신자유주의의 결합으로 봐야 해요. 국제사회도 신자유주의에서의 전환을 모색하는데 혼자 거꾸로 가고 있어요. 세계는 새로운 반성과 전환점을 찾고 있는데도요.” -비판 언로를 막는다는 점에서는 미네르바 사건도 떠올리셨을 것 같습니다. “이게 대체 감옥갈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정부는 미네르바의 전망과 분석을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고 경제를 망친다고 바라본 겁니다. 환율에 영향을 줘 공공에 불이익을 줬다는 것이지요. 견해는 논쟁과 논박의 대상이지 감옥부터 보내고 출발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일은 어찌됐든 이후 기준이 된다는 거예요. 판례처럼요. 일반 네티즌들에게도 이게 기준으로 작용해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겁니다.” -용산 참사와 관련해 청와대 행정관이 경찰청에 메일을 보내기도 했는데, 같은 맥락으로 보시나요. “정부가 e메일 홍보지침 등으로 언로를 통제하는 걸 보면 국민을 그저 조작의 대상으로 보는 것만 같아요. 이해를 구하고 공유점을 찾아야 하는 것인데 조삼모사만 하고 있는 거죠. 잘만 속이면 끝까지 속일 수 있다고 믿는 듯합니다. 국민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요. 좀더 예의를 갖고 국민을 봐야 합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드러내 놓고 말하기 편한 일이 아니지만 용산 사태는 장기적으로 볼 때 변화의 결정적 계기가 될 겁니다.” -앞으로 정부의 비판언로 차단이 더 심해질 거라 보시나요. “미네르바의 ‘경제 안 좋다’는 견해 때문에 경제가 정말로 나빠졌다고 생각하는 정부라면, 앞으로는 더욱 더 심해지지 않겠습니까. 아직 우리나라 경제위기는 시작도 안 됐습니다. 두세 달 후에는 진짜 위기가 될 겁니다. ‘경제는 심리니까 좋게 생각하자’는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정부이기 때문에 경제가 더 힘들어지면 그만큼 더 비판을 막으려 들 겁니다. 경제는 심리를 통제해서 되는 게 아니고 경제적 법칙이 있는 거예요. 수많은 제도의 결과물이고요. 제도를 개선하고 흐름을 바꿔야 바뀌는 건데…. 경제가 심리전이라는 말은 경제 연구해본 사람들이 한 번씩은 하는 말이지만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이 할 말은 아니지요.” -그에 대한 비판여론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게 될까요. “군부독재 시절에도 쉽게 눌리지 않고 할 말 했던 사람들 많습니다. 인터넷이나 출판물이라는 통로가 제약을 받게 되면 다시 대자보를 붙이거나 길거리로 나갈 수 있어요. 거리나 대학에 붙던 대자보가 10년 사이 개방적이고 비용이 적게 드는 인터넷 공간 안으로 들어왔던 것인데 이명박 정부가 이를 다시 길거리로 내몰고 있는 거죠.” -지난해 촛불집회와 같은 일이 반복될 수도 있을까요. “지난해 주제가 정의·생태·정책·보건이었다면 올해는 빈곤이 주제가 될 겁니다. 배고픈 사람이 나오는 것이 제일 무서운 거예요. 이들이 쏟아져나온다면 정부는 지난번 촛불집회때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겁니다. 경기가 좋으면 다른 장치를 통해 구제하면 되지만 지금은 감세 상태에서 대부분 예산을 4대강 정비로 뺐으니까 긴급자금이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게 많지 않을 겁니다. 경제집회는 돈을 주거나 일자리를 줘야 끝나요. 촛불집회는 끝나고 돌아갈 집이 있었지만, 경제집회에 나온 이들에겐 갈 집도 없고 갈 일터도 없거든요.”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부 집권 1년을 평가한다면. “가장 후퇴한 것은 민주주의입니다. 4~5년 전에 그래도 한국사회가 가장 자랑했던 게 절차적 민주주의였습니다. 내용상으로 실질적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사회구조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절차는 뒤집을 수 없다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깨졌어요. 정책 추진 과정에서 3자, 4자간 논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당장 미디어법, 녹색성장관련법, 금산분리 등의 법안은 1년 정도 논의가 필요한 것들인데 속도전으로만 몰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는 속도전이 아니에요. 길고 피곤해도 절차를 거치는 사회입니다. 정부는 비판하는 개인들의 입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굳이 칭찬할 것도 꼽는다면 일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전 정부보다는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큰 틀에서 말입니다. 각론으로 들어가 내놓는 해법들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요.”
<유정인기자 jeongin@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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