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불황에 자기 것 챙기기도 힘든 요즘, 연봉의 80%를 기부하는 이가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서른세 살의 컨설턴트 고영씨. 대출까지 받아가며 기부하는 이 청년은 “많이 줄수록 많이 얻는다”고 말한다. 모두가 알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단순한 진리를 실천하는 원동력은 ‘금’보다 ‘꿈’이 더 값지다는 믿음에 있었다.
“저도 제가 대출까지 받아서 기부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제가 러시아 연해주 동포들의 정착을 지원하는 NGO(비정부기구) ‘동북아 평화연대’의 컨설팅을 맡았었거든요. 작년 설에 4박 5일 일정으로 연해주에 갔는데 그곳 사정이 너무 열악하더라고요. 종자 살 돈이 부족해서 농사를 제대로 못 짓는 걸 보고 내가 도움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마이너스 통장 대출까지 받아가며 지원한 돈이 2천5백만원이다. 적지 않은 돈을 기부하며 고민이 많았을 법도 한데 정작 그는 “돈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분들이 자신감을 갖는 기회를 만든 것이 더 중요하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물질적인 도움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콩 종자돈 펀드’나 말 생태농장, 승마 체험장 등 관광 상품으로까지 개발 가능성도 함께 보고 왔다. 연해주가 1천 년 전, 대조영이 말을 타고 호연지기를 길렀던 곳임을 염두에 둔 구상이다. “연해주에 갔을 때 발해의 옛 성터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어요. 끝도 없이 펼쳐진 초원에 말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말 생태 구역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말은 인간에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동물이래요. 정신지체아동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말 생태 구역을 만들면 그렇게 자연과도 교감하고 또 그곳에 정착해 사는 고려인들의 자립을 돕는 좋은 사업이 될 거예요. 돈보다는 지속 가능한 비전이 중요하죠.” 요즘 세상에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그의 기부는 남들 눈을 의식한 허식이나 호기가 아닌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습관이다. 그는 2007년 유산기증운동을 벌이고 있던 유니세프에 자신이 살고 있던 원룸 전세 계약금 1천5백만원을 사후 기증하기로 한 ‘유니세프 유산기증운동 1호 기부가’이기도 하다. 그 후 2년마다 재산이 늘어나는 만큼 기부 금액도 늘리고 유언장을 새롭게 공증받겠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소식을 듣고 지원을 요청한 교도소의 한 재소자에게도 지금까지 매달 일정액을 지원하고 있다. 기부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한 번도 부모님 재산을 가지고 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당연히 제 자식들에게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마침 유니세프에서 유산기증운동을 해 마음을 먹게 됐죠. 그 후에 청송교도소의 어느 재소자로부터 장문의 편지를 받았는데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데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내용이었어요. 학사고시를 보고 심리학을 전공해 심리치료사가 되어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는 그의 결심에 마음이 움직였죠. 지금도 공부 중인데 학사고시는 무리 없이 통과할 듯싶어요. 그분도 꿈이 계속 커지더라고요. 제 작은 도움으로 점점 발전해나가는 걸 보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어요.”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으니 여기저기서 도와달라는 소리도 많이 듣는다. 누군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병원비를 내주고, 빚 때문에 살기 힘들다는 사람 대신 돈을 갚아줬다. 교도소에서 학업에 정진하고 있는 수감자의 학비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교 후배들의 지원비로 아낌없이 주다 보니 정작 그가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차가 없으니 유지비가 드는 것도 아니고 옷을 자주 사 입는 편도 아니에요. 여기저기 맛있는 음식 찾아다니는 식도락가도 아니어서 후배들 밥값 외에는 거의 드는 돈이 없어요. 지금 통장 잔고가 일시적으로 비었다고 해서 두려울 건 없다고 봐요. 많이 주면 또 그만큼 얻게 되는 게 세상의 이치인 것 같아요.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옷이며, 보약이며 보내주시는 분들도 많습니다(웃음).” 결혼하면 2천만원을 축의금으로 주겠다는 분도 계시다며 기분 좋게 웃는 그를 보며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가 ‘밑지는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렇게 기부하며 살게 된 건 자신이 힘들었을 때 여러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기억 때문이다. “IMF 때 아버지 사업이 무너졌어요. 당장 하숙비가 끊겨서 그전에 모아둔 돈으로 넉 달째 밀린 하숙비를 내고 군대에 갈 수밖에 없었죠. 제대 후에 집에 가보니 다른 사람이 살고 있더라고요. 등록금은커녕 당장 살 곳도 없었어요. 다행히 교회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작은 방에 머물 수 있었는데 14평짜리 집에 9명이 모여 살았어요. 아침, 저녁이면 전쟁터가 따로 없었죠. 등록금을 모으기 위해서 하루 두 끼만 먹고 과외를 하면서 대학을 졸업했어요. 정말 힘들었지만 지금의 저를 만든 시기라고 생각해요. 평생의 멘토도 많이 만났고 제 인생의 큰 자산을 얻은 시기였어요.” 힘든 형편 속에서도 시민단체 활동이나 NGO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대학 문화 NGO에서 활동하다 4학년 때는 ‘NGO 총학’을 내걸고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결과는 낙방. 선거운동으로 남겨진 8백만원의 빚을 갚아준 사람이 바로 고대 앞 ‘영철버거’ 사장 이영철 대표다. “학생회장 선거운동을 하며 영철이 형이랑 친해졌는데 떨어지고 나서 제가 기가 많이 죽었어요. 학교 앞 ‘영철버거’를 지나가는데 고개를 들 수가 없더라고요. 그때 영철이 형이 자판기 커피를 뽑아주면서 조언을 많이 해주셨죠. 당신은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는데 넌 명문대 다니지 않느냐,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거라고 힘을 주셨어요. 그렇게 해서 다시 공부할 용기를 얻었고 대학원 첫 등록금까지 영철이 형이 내주셨으니 제 평생의 멘토를 얻은 거나 마찬가지였죠. 항상 돈을 좇지 말고 꿈을 좇으라는 말도 영철이 형이 해주신 말씀이에요.” 가장 절박한 상황을 살아봤고 또 좋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봤기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가 처음으로 큰돈을 기부한 것은 지난 2006년 11월이었다. “한국 리더십 학교에서 알게 된 친구한테서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아버지가 백혈병 때문에 수술을 받으셔야 하는데 동생의 백혈구가 일치하는데도 불구하고 등록이 안 돼 있어서 2천만을 더 내야 된대요. 이런 법이 어디 있냐며 하소연을 하기에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했어요. 그 친구 형편을 잘 알고 있었거든요. 집 보증금으로 마련했던 1천만원을 보내줬죠. 통장 잔고를 보면서, 돈은 어떻게든 쌓이는 거고 그 친구를 돕는 것은 지금 아니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힘겨운 상황에서 적절한 시기에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무사히 대학을 마치고 여러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거니까요. 도움을 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에요. 타이밍을 놓치고 필요할 때 도움을 주지 못하면 도움을 받는 사람과 도움을 주는 사람 모두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는 게 그동안의 경험에서 터득한 교훈입니다.”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사람들에게 그때그때 응답을 해주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타이밍에 신경 쓰느라 본인의 타이밍은 아직 챙기질 못했다. 작년까지는 결혼에 큰 욕심이 없었는데 올해에는 여자친구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결혼하면 모든 일을 놓고 1년 동안 신혼여행을 가고픈 소망도 있다. 결혼 비용과 신혼여행 비용은 이미 지원을 약속받았다니 이만하면 준비된 신랑감이다. 돈, 시간, 재능… 기부는 무궁무진 그는 요즘 재능과 지식을 바탕으로 남을 돕는 재능 기부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 그동안 컨설턴트로 일하며 쉬는 날이나 휴가 때 무료로 사회적 기업과 비영리 단체의 운영 컨설팅을 해주곤 했는데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재능 기부 단체 ‘소셜 컨설팅 그룹(Social Consulting Group)’을 본격 가동하게 된 것. 2007년 3명의 컨설턴트로 시작한 이 그룹은 현재 컨설턴트와 회계사, 변호사를 포함한 24명의 전문가와 20여 명의 대학생 인턴들이 재능을 나누고 있다. 그는 현재 이 자원봉사자 그룹의 대표다. 평일 새벽 6시 출근,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빡빡한 직장생활에 자원봉사까지 할 시간에 어디 있겠냐 싶지만 그에게는 일요일이 있었다. “다들 직장인이기 때문에 한자리에 모일 시간이 일요일밖에 없어요. 일요일 오전 9시 30분에 모여 자원봉사를 시작합니다. 남들은 쉬는 휴일에 일을 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이지만 누군가를 돕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희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건 저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에게 꿈을 물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닌, 언젠가 남북통일이 되는 그 때를 위해 하나씩 준비를 해나가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탈북자나 고려인 지원에 애착을 갖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아무나 못하는 것이 기부가 아닐까요.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고 또 쉽게 생각하면 쉬워요. 나이가 많아서, 혹은 나이가 너무 어려서 못하는 것이 아니죠. 아이가 자신보다 어린 꼬마와 놀아주는 것도 기부가 될 수 있거든요. 자신의 시간을 나누는 것,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것도 기부입니다. 돈이 많은 분들은 돈을, 시간이 있는 분들은 시간을, 재능이 있는 분들은 재능을 기부할 수 있어요. 절망을 아는 사람은 절망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가난할수록 더 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대단한 박애주의자도, 엄청난 부자도 아니다. 남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며 진취적이고 긍정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건강한 청년일 뿐이다. 주면서 얻는 행복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기쁨이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성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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